독서 후기

숙주인간

미레티아 2017. 12. 4. 16:26

제가 작년에 미국을 갔다가 시카고 대학교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This is your brain on parasite라는 까만색 책이 있는데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질렀습니다.

그러고 한국에 와서 사전을 찾아가며 낑낑대며 읽었는데

서문 하나 읽고 땡쳤습니다.

너무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그래서 입시 끝나면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시 끝나고 서점을 가니까 웬걸, 번역본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또 질렀습니다.... ㅋㅋㅋㅋ 이럴 거면 영어책 왜 샀지 ㅋㅋㅋㅋ


어쨌든, 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영어로 된 책과 차이점이 조금 있긴 하지만(사진의 여부, 제목, 디자인...)

정말 번역을 잘 한 것 같습니다.

내용도 짱, 번역도 짱이랄까....

책은 다양한 동물의 중추신경계를 교란시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동물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기생충에 대한 내용입니다.

확실하게 밝혀졌다 여겨지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한 기생충에 대해 먼저 나오고요,

어쩌면 인간에게 영향을 줄 지도 모르는 기생충에 대한 연구들이 나옵니다.


인간이 아닌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아는 것이 많았어요.

그런데 작가의 서술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요,

단순 사실 나열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연구자와 연구 과정을 포함하는 서술을 했습니다.

즉, 신경기생생물학의 대가인 재니스 무어가 그 길을 어떻게 택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어떠한 연구를 했고

어떤 이유로 논문 reject를 당했는데

어떠어떠한 이유로 accept이 되고 연구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뒤로는 누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그 역사적인 과정을 따라서 서술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방법, 역할 등 다양한 철학적 생각들과 함께

재미있는 기생충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사실 이쪽 내용은 아는 것이 많아서 연구 과정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특히, 프레데리크 토마씨가 연가시 연구하려고 뉴질랜드 갔다가

자기 집 근처(프랑스 어딘가)에 연가시가 무지무지 많다는 것을 깨닫고

어이없어 하는 장면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ㅋㅋㅋㅋ

(그리고 혹시 궁금해 할 사람을 위하여 책 중간에 나오는

저자가 독자에게 심취하기를 바라는(?) Leucochloridium 영상을 올려드릴께요)



일반적인 동물에 대한 연구 소개가 끝나면 인간으로 넘어갑니다.

사실...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믿고 싶은 내용은 아니에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원하는 이러한 감정들이

어쩌면 기생충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니...

저자도 잘 믿지 않아서 여러 과학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더라고요.

톡소플라스마와 조현병 사이의 관계,

톡소카라와 인지기능 저하와의 관계,

프로바이오틱스와 공포, 절망에 대한 신체 반응,

미생물유전체, 치유 본능,....

진짜 안 믿겨요 ㅠㅜ 아니면 안 믿고 싶은 건가 ㅠㅜ

정말 다 인상깊었는데

특히 제가 주의깊게 본 장면은

감기에 걸리면 좀 더 사교적이게 될 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었습니다.

왜, 그런 속설이 있잖아요, 감기 걸렸을 때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

더 빨리 낫는다....^^;;

그래서 제가 감기 걸렸을 때 친구들에게

"일로 와! 옮겨줄께!"를 외치고 다녔는데

(미안해 얘들아....)

왠지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는 감기 걸렸을 때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반항으로

덜 사교적이게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

인간 관련 연구는 아무래도 연구가 설문 및 관찰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모호한 느낌도 없잖아 있고,

또 이런 연구를 해서 만약 진짜 기생충이 우리의 의지를 조작한다면,

(특히 뒷 장에 등장하듯이 도덕적 감정까지 조작 가능하다면)

법원에서 "판사님, 이것은 제 몸의 기생충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시

그걸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애매하고,

배심원들의 기생충 보유 여부를 따지고

재판에 적절한 비율로 배치할 수도 없고,

참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진실이니까...잘 마주해야겠죠?

앞으로 과학은 더 윤리적인 면을 잘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 책 재미있어요!

기생충 사진을 찾아가면서 읽는다면 좀 혐오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지식도 얻고, 재미도 있어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단, 영어 정말 잘하지 않으면 영어로 보지는 마세요...진짜 어려워요...

번역 잘 해 두었으니까 한국어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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