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랩 걸

미레티아 2018. 3. 26. 15:34

  제가 평상시에는 도서실에 가서 제목과 표지와 내용을 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집어서 읽는 성격인데 어느 날, 왠지 그렇게 책을 읽다가는 진짜 재미있는 것을 놓치고 교양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도 못 읽고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책 목록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이 표지도 예쁘고 저도 고등학교 대 종종 실험실에서 있던 소녀였으니까 왠지 공감이 갈 것 같아서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에세이입니다. 딱히 분류는 500번대에 되어있지만 솔직히 800번대로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아, 참고로 저희 학교는 한국십진분류법을 안 따르고 듀이십진분류법을 따라서 500번대가 자연과학입니다.... 고딩때와 달라서 종종 도서관에서 헤매요 ㅠ.ㅠ) 저자는 여성 과학자로, 과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어릴 때부터 과학자의 길을 꿈꿔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과학자로 자라나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이 있었고, 성격이 과학만 주구장창 파는 그런 성격이라 학술대회에 얼굴을 비추고 유명해져서 국가에서 지원금을 따 내는 것을 처음에는 못 했다고 해요. 나중에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열심히 살아서 돈을 잘 따냈나봐요.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저자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책과 같은 상황에 있으면 잘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먼저, 밤 늦게까지 일을 못합니다. 사실 이게 저의 가장 큰 걱정이기도 하는데, MT를 가서 정말 술도 안 마시고 물만 마시고 있는데 얼굴에 피곤해...가 써져있었나봐요. 다들 걱정해 주더라고요. 의과대학에 들어온 이상 앞으로 잠을 못 자는 일이 많을 텐데, 잠을 안 자고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두 번째로, 학회를 가겠다고 며칠씩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은 못할 것 같습니다. 미국이 땅덩어리가 엄청 크잖아요. 그래서 학회를 굉장히 멀리까지 가야 하는데 비행기는 비싸니까 차를 타고 가는 일이 많나봐요. 전.... 그렇게 멀리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가 운전을 안 한다 하더라도 속이 다 뒤집어지고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안 해봐서 못 한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진짜 못 할 것 같아요.

  제일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열정이었습니다. 저도 무슨 일에 대해서 초반에는 열정이 매우 강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과가 안 나오고,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르면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을 텐데, 내가 왜 이걸 물고 늘어지고 있지? 굳이 이거 하나 못 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나?? 열정을 끝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은 부러운 일입니다. 이미 깊숙히 진도가 나가 발을 빼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의감이 들면서 열정이 식어버리면, 그것을 마무리 짓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이 없거든요.

  이 책의 내용은.... 음.....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은 소녀들에게 적합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이 책 읽으면서 실험실에서 일하기 싫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물론 지구과학과 식물학과 이 쪽은 야외에 많이 나가야 하고 유전공학과나 분자생물학과 실험실과 성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실험실이 싫다고 외치면 안 됩니다. 단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식물과 인생을 비유한 내용을 읽고 싶다거나, 이미 실험실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거나, 이과계통으로 가지 않을 문과이시거나, 음... 하여간 실험실에서 일하는 자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는 약간 비추합니다. 

  네, 뭐 그렇습니다! 저도 막 재미있어~~이러면서 본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아, 미국의 식물학-지구과학자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과 많이 다르네, 그냥 그 수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