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책을 받고 펼쳐보았을 때 기겁을 했습니다.
흰 종이에 까만 만화가 쭉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이 참...어려워 보였습니다.
저는 한국의 만화에 익숙해져 있고 다른 해외 만화는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미국에서 쓰는 만화 형식은 굉장히 낯설었거든요.
그래서 걱정을 하고 책을 읽어 보았는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더군요.
한 번 읽기 시작했더니만 그냥 다른 할 일이 없으면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 굉장히 몰입을 하게 만듭니다.
이 이야기는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가 직접 겪었던 일들을
저자가 열심히 받아적고 녹음해서 그린 만화입니다.
그래서 책은 이중화자의 모습으로 진행되지요.
아트 슈피겔만(책에서는 '아티'라고 합니다.)의 현재 시점의 이야기,
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과거 시점의 전쟁 시절 이야기.
전쟁 시절을 상상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다고 하기에
어쩌면 더 와닿고 몰입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폴란드에서 살던 슈피겔만의 가족이 유태인이라서 독일군이 쳐들어왔을 때
가지고 있던 공장을 넘겨주게 되고 가구도 넘겨주고 먹을 것도 못 구하니
불법적으로 살아가면서 떠돌이 생활도 하고, 배신도 당하면서 살다가
결국 수용소로 잡혀가게 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엄청 악명이 높죠.
그래서 그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서술해가다가
전쟁 막바지에는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이 이야기 내내 인상깊었던 것이, 블라덱씨와 아내분인 아냐씨가
둘다 그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서 전쟁 후에 다시 만났다는 점이에요.
솔직히 그런 전쟁 상황이면 가족이던 뭐던 간에
자신만을 챙기기 바쁠 것 같은데
블라덱씨는 수용소에서도 항상 여자 수용소에 갇혀있는 아냐씨를 걱정했죠.
그래서 둘이 전쟁 후에 무사히 살아남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어디를 가든지 할 수 있는 자신의 특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블라덱씨는 폴란드어, 이디시어, 독일어, 영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독(?)한 폴란드 군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어서
수용소에서 몇 달을 편하게 지낼 수 있었죠.
그 폴란드 군인은 왜 영어를 배우느냐고 블라덱씨가 물었을 때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긴다면 미국으로 건너가 살아야 할 것 같아서....라고
(책과 완전 같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그랬던 현실이 너무 슬퍼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유태인이라 해도 본인와 같은 폴란드인이기도 한데,
아니, 국적을 불문하고 그냥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블라덱씨가 장화를 고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아냐씨가 여자 수용소에서 좀 성질 나쁜 그 뭐랄까...감독(?)의 장화가 헐었기에
자신의 남편이 그 일을 하는데 잘 고친다 추천해줘서 맡겼더니
블라덱씨가 너무너무 잘 고쳐줘서 아냐씨를 발로 차면서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슬픈...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준비된 사람들 같습니다.
친독한 폴란드인들도, 수용소에서 빵을 훔쳐가는 유태인들도,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을 죽여야하는 군인들도, 그 누구든지 말이죠.
내가 살기 위해서,
그런데 살면 죽은 것보다 뭐가 더 좋을까요?
아, 물론 블라덱씨처럼 운이 좋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전쟁 후에도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좋습니다만
수용소에서 죽어나가고 언제 죽을지 모르고...
그렇게 짓밟아서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죠.
지금 나치가 없더라도 유태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비교해보면
그들도 서로 그들만의 경쟁을 하겠죠.
그것은 그들이 더 좋을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겠죠.
현재 우리들만 봐도 경쟁을 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죠.
중간에 희망을 버리는 사람들도 무지 많습니다만
그래도 그 희망을 실현시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만화책에서 쥐는 유태인, 고양이는 독일인(나치 뿐만 아니라
연합군이 쓸고 지나간 마을의 사람들도 고양이로 표현했더군요.
그 장면 보면서 연합군도 나치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나치가 차별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하더라도...
연합군도 일종의 차별을 한 것이지 않나요...?)
개구리로 그려진 것은 프랑스인이었나? 개로 그려진 것은 미국인입니다.
돼지는 폴란드인들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인물묘사를 통해 더 절절하게 메시지를 전하더군요.
어쨌든, 이 책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나치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보기도 싫다 하시더라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몰입을 하고
중간에 현재시점 이야기에서 나오는 흑인의 히치하이킹이야기 등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차별을 하고 있는지, 그런 풍조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등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있지만
아직 세상에는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많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