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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10

『버자이너』를 읽고: 사회적 편견이 과학을 가리면 생기는 일

최근에 (의학 분야로) 논문을 하나 투고했다.논문을 투고할 때에는 저널마다 요구사항이 좀 있는데그 논문을 받아준 학술지는 '반드시 성별을 구별하여 분석한 결과가 있을 것'이었다.이미 성별과 연령을 층화하여 분석한 결과를 다 갖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문득 왜 다른 학술지는 이걸 요구를 안 할까 싶었다.생각해보니 참고문헌으로 작성한 선행 연구들도 성별 분석을 안 한 경우가 왕왕 있었고,왜 성별이 질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비록 표지가 조금 숭해보여서 빌려도 되나 살짝 고민을 했지만어차피 '버자이너'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눈치 안 보고 그냥 빌려왔다. 이 책은 성과 연관된 의학 이야..

독서 후기 2025.02.12

『삼체』를 읽고: 물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소설

지난 12월,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었다.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읽었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가 '삼체'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했다.약간의 스포일러를 좀 해줬는데 세계관이 흥미로워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상호대차를 하는 노력까지 해 가면서 세 권을 다 구해서 읽었다. 책은 1, 2, 3권의 주인공이 다른 옴니버스식 구성을 띠고 있다.1권은 세계관 소개 및 사건의 발생과 배후에 대한 이야기이고,2권은 그 사건을 해결하는 지구인의 이야기이고,3권은 사건 이후에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구인이 생존을 도모하는 이야기이다.개인적으로는 1권이 제일 마음에 들었지만 과학에 배경지식이 없는 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고,2권이 가장 소설 같았고 ..

독서 후기 2025.02.03

『고릴라 재판의 날』을 읽고: 토론할 거리가 참 많은 책

『고릴라 재판의 날』이라는 소설은 현실에서 있었던 유인원 관련 사건, 연구들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한 소설이다.주인공은 인간 수준의 이해력과 어휘력을 구사하는 고릴라 '로즈 너클워커'로,원래 카메룬의 정글에서 살면서 연구원들로부터 수어를 배웠는데그녀의 무리를 지키던 실버백이 사망하면서 미국으로 넘어와 동물원에서 살게 된다.그러다가 동물원 우리 안으로 한 아이가 떨어지고,아이의 안전을 우려한 동물원 측에 의해 그 아이를 잡고 있던 수컷 고릴라(=로즈의 남편)가 실탄 사살된다.로즈는 동물원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였고,한 번의 패소와 한 번의 승소로 고릴라이지만 카메룬인으로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줄거리 측면에서는 좋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소설이 모티브로 하는 사건들이 너무 각색되지 않은 채 사용..

독서 후기 2025.01.16

『(곰돌이 푸 초판본) WINNIE-THE-POOH』를 읽고: 피식 웃게 되는 창의적인 이야기

어릴 때 곰돌이 푸 인형이 있었다.근데 막상 곰돌이 푸 책이나 만화영화를 봤었나 기억이 안 난다.도서관에 '곰돌이 푸 초판본'이라고 적힌 책이 있길래 어떤 내용이었을지,동화이지만 성인이 되어서 보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특별히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고, 곰돌이 푸와 그 친구들인아기 돼지 피글렛, 당나귀 이요르, 토끼 래빗, 올빼미 아울, 사람 크리스토퍼 로빈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중간에 캥거와 루(캥거루 모자이다)가 숲으로 이사와서 같이 산다.만화영화에는 호랑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본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순수한 창의력이 돋보인다.푸가 나무 위의 꿀벌집까지 풍선을 타고 올라간 다음에 꿀을 획득하려고 하는 에피소드에서풍선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은 성인도 생..

독서 후기 2024.11.14

『라벨 뒤의 진실』을 읽고: 한 쪽만 알았던 부끄러운 나를 반성하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국제보건 동아리를 했었다.국제보건은 "Health for all"을 모토로 하여, 어떻게 하면 소외되지 않고 모두의 보건 수요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문이다.당시에 여러 책, 다큐멘터리 등을 기반으로 공부하였는데그 중에 하나가 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해당 다큐는 거대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치료제로 특허로 폭리를 취하는 현실에서제너릭 의약품의 제조와 판매를 허가하도록 정치적으로 맞선 이야기이다.제너릭 의약품이란 오리지널 의약품과 성분이 동일하게 제작한 의약품이다. 나는 해당 다큐를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다.물론 제약회사가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긴 하지만치료제의 개발비 중 국가 펀드도 있기 때문에 그 개발비를 다 회수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고어..

독서 후기 2024.11.07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고: 섬세한 묘사로 시대와 감정을 읽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이 그림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그걸 들은 주변인들의 반응은 '오 그래 분위기가 좀 그래'와 '아니 말도 안 돼'로 극명하게 갈리긴 했지만...왜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은 걸까?그리고 이 책을 읽은 지금, 국어선생님이 혹시 이 책을 읽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도 있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이며 소녀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소설은 이 점에서 시작한다.델프트 출신 소녀 그리트의 아버지는 타일 제작자로 일하다가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그래서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화실을 청소하는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베르메르가 되게 그림과 화실에 진심인 사람으로 나오는데,화실의 모든 물건이 청소 전과 후가 일치해야 하는 사람으로시각장애인인 아버지를 위..

독서 후기 2024.07.05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를 읽고: 인간다운 악마와 악마같은 인간의 대결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그래서 영혼을 거래로 하는 소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영혼이 뭐길래 악마는 영혼으로 거래를 하고, 인간은 그것을 저버리기 싫어할까?그걸 이해하는 것은 나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그렇지만 영혼을 거래로 하는 소설을 꽤 흥미롭다.그것을 얻거나 받기 위해 계약을 하고, 계약을 깨고 싶어하거나 바꾸고 싶어하며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주어진 한계 내에서 다분히 노력하는 우리의 인생의 축약판 같아서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어둠은 악마는 아니다.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 주인공인 애디는 1700년대 초, 그 당시로는 혼기를 넘긴 여성이었다.주변의 강요로 아이가 셋이나 있는 홀아비랑 결혼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해가 지고 난 후 어둠에게 소원을 빈다.어둠은 원하는..

독서 후기 2024.05.22

『무한을 넘어서』를 읽고: 무한대 탐색을 위한 입문서

예전에 꿈 속에서 친구와 논쟁을 하는 꿈을 꾸었다.논쟁의 주제는"3차원 공간에서 임의의 두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날 확률과 실수에서 숫자 하나 골랐는데 본인 전화번호일 확률 중에서 뭐가 더 클까"...였다.참고로 난 수학을 안 한지 6년 정도 되었는데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잠에서 깨고 나서 그 친구에게 연락하니 나는 후자라 생각하고 친구는 전자라 생각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꿈은 이루어진다...)이것의 정답을 알고 싶어서 수학과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둘이 같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사실 걔네가 설명을 해줬는데 잘 이해가 안 되어서 내 언젠가는 무한에 대해 섭렵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마침 도서관에서 『무한을 넘어서』라는 책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정말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독서 후기 2024.05.15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고: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

어릴 때는 판타지 소설을 좀 봤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면서는 적게 보는 것 같다.아니, 사춘기 때부터 나는 과학책을 열심히 봤기 때문에 애초에 소설을 안 보고 살기는 했다.소설을 안 좋아했던 것은 그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저 사람은 너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게 정해진 주인공이라 맘에 안 들고,쟤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바보같은 처신을 해서 맘에 안 들고,나이가 들어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입체적인 시각에서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소설을 좀 읽는 것 같다.물론 '좀' 읽는 것이지 많이 읽지는 않는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서점 평대에 깔려있는 알록달록한 표지를 보고 처음 접했다.과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공부한 여자로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도서관에서 발견한 ..

독서 후기 2024.04.29

『드루이드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를 읽고: 나의 식물들 다 잘 자랐으면...

2년 전, 선물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어디 밖에 나가서 밥 먹기도 두려운 때, 기숙사에서 나의 생일을 맞았다. 동기들이 고민하여 사 온 나의 생일선물은 바로 선인장. 사실 나는 어릴 때 선인장을 키우다 죽여본 적이 있다.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물을 극단적으로 줘서 그런 것 같다. '선인장이니까 물 안 먹어도 되겠지~' 라면서 한참 동안 안 주다가, '어? 너무 오래 안 줬는데?' 하면서 왕창 주고. 과습으로 죽었는지 말라죽었는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그 때도 선물로 받은 선인장이어서 슬펐다. 선물 준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더 오래 살 수 있었을텐데 못난 주인 만나서 일찍 죽었으니까. 그래서 선인장을 딱 선물로 받았을 때 다짐했다. 내 반드시 이 선인장은 죽이지 않으리..

독서 후기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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