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곰돌이 푸 인형이 있었다.
근데 막상 곰돌이 푸 책이나 만화영화를 봤었나 기억이 안 난다.
도서관에 '곰돌이 푸 초판본'이라고 적힌 책이 있길래 어떤 내용이었을지,
동화이지만 성인이 되어서 보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특별히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고, 곰돌이 푸와 그 친구들인
아기 돼지 피글렛, 당나귀 이요르, 토끼 래빗, 올빼미 아울, 사람 크리스토퍼 로빈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중간에 캥거와 루(캥거루 모자이다)가 숲으로 이사와서 같이 산다.
만화영화에는 호랑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본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순수한 창의력이 돋보인다.
푸가 나무 위의 꿀벌집까지 풍선을 타고 올라간 다음에 꿀을 획득하려고 하는 에피소드에서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은 성인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지만
어느 색의 풍선을 고르는가에 대한 대화는 아기자기하니 귀여웠다.
초록색 풍선을 타면 나뭇잎인 줄 알지 않을까?
파란색 풍선을 타면 하늘인 줄 알지 않을까?
또한, 누구 하나를 배제하지 않고 다 같이 살아가려는 마음씨가 참 예쁘다.
솔직히 캐릭터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약간씩 이상하다.
일단 푸는 이요르에게 선물하려던 꿀단지를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가는 길에 다 먹어버린 다음, 누가 먹었지?라고 생각한다.
금세 자기가 먹었다는 것을 깨닫긴 하지만...
아울의 잔소리를 잘 참아가며 끝까지 듣고 과잉행동이 없으니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는 아닐 것 같고, ADD(주의력 결핍증)에 해당할 것 같다.
이요르는 우울증이다.
단순히 비관적인 수준이 아니라, 파티에 초대하는데 본인 말고 다른 친구를 초대하려고 하는 것인 줄 알고,
본인을 초대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럴리가 없다고 부정하면서 그날 비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글렛은 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불안증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은 정신병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조금 사회성이 떨어져보인다.
남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뽐내길 좋아하고 남들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말만 계속한다.
래빗과 캥거, 루는 본 책 내용으로는 특별한 정신병리가 보이지 않는다.
현실세계에서 저런 캐릭터가 있으면 놀이에서 빼거나, 피하려고 하거나, 화를 내고 싸우는 일이 잦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는 아울의 말을 잘 경청해주고, 푸의 행동에 대해 웃긴 하지만 놀리진 않으며,
피글렛을 위해 도움을 주고, 이요르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해준다.
참 마음씨가 따듯하고 넓은 친구들이다.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 것 같다.
큰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고
가끔씩 피식 웃는 포인트도 나와서 재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