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재판의 날』이라는 소설은 현실에서 있었던 유인원 관련 사건, 연구들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인간 수준의 이해력과 어휘력을 구사하는 고릴라 '로즈 너클워커'로,
원래 카메룬의 정글에서 살면서 연구원들로부터 수어를 배웠는데
그녀의 무리를 지키던 실버백이 사망하면서 미국으로 넘어와 동물원에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동물원 우리 안으로 한 아이가 떨어지고,
아이의 안전을 우려한 동물원 측에 의해 그 아이를 잡고 있던 수컷 고릴라(=로즈의 남편)가 실탄 사살된다.
로즈는 동물원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였고,
한 번의 패소와 한 번의 승소로 고릴라이지만 카메룬인으로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줄거리 측면에서는 좋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이 모티브로 하는 사건들이 너무 각색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으로 떨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릴라를 사살한 사건은 2016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수어를 배운 고릴라는 코코라는 친구로, 2018년에 사망했다.
또한, 재판의 승소 과정에서 고릴라에게 인권을 적용시키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나오는 주장,
즉 인간만이 언어 기관(language organ)을 가진다는 노엄 촘스키의 주장과 유사하다.
(참고로 촘스키의 주장을 비꼬기 위해 님 침스키라는 침팬지를 인간처럼 양육했던 연구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런 쪽에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는 첫 몇 페이지를 읽으면 모든 줄거리가 다 예상이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함의하고 있는 내용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경중은 따질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유인원에게 수어를 가르쳐도 되는가, 자연스러운 것이란 무엇인가,...
독서토론을 한다면 주제를 몇 십 개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 많다.
나는 아무래도 이과고, 실험실 환경이 더 익숙하니까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점은 '해당 실험이 윤리위원회를 통과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물론 수어를 가르치는 것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심각한 위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실험이 성공하면 그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수화를 배웠던 침팬지 워쇼는 다른 침팬지를 처음 보고 '검은 벌레'라는 식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유인원들을 사망할 때까지 책임지기도 힘들다.
어느 정도 자라면 동물원에서 생활하도록 보내게 되는데,
이런 행태가 괜찮은 것인가?
이제는 철 지난 연구이고, 더 이상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분야이다.
그 다음으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생명의 경중이다.
예전에 온라인 상에서 불이 났을 때, 우리집 고양이 vs 옆집 아이 중에서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냐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난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아서 당연히 옆집 아이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옆집 아이보다는 고양이를 살리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충격을 받았다.
동물원에서 아이가 떨어져서 실버백을 총으로 쏜 사건에 대해서도
아 물론 멸종위기이긴 하겠지만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그게 최선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럴까?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다 생명의 무게에 대한 병아리와 스님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병아리 1마리 = 스님 1명 ;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는 이야기였음)
이론상 그렇다는 건 알겠는데
뭔가 실제 상황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먼저 살리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종족 보전을 위한 감정인 것인지,
아니면 사회 유지를 위해 인간이 정의 자체를 정의했기 때문인건지,
매우 고민이 되는 문제이다.
사실 계속 따지다보면 생명이 소중하다는 전제조건이 옳은가 틀린가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같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을 때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