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게시판

에이즈, HIV감염이란?: 원인, 증상 및 경과, 진단, 치료, 완치 (feat. 줄기세포)

미레티아 2024. 8. 12. 16:31
반응형

최근에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4-02463-w

HIV가 완치된 7번째 사람에 대한 기사인 것 같다.

(cf. HIV감염 상태는 에이즈가 아니다! - 추후에 서술할 예정)

사실 이전에도 줄기세포 이식으로 완치된 분이 6명이나 계신데 뭐가 흥미로운 걸까 원문을 보니

이번 환자가 수여받은 줄기세포는 heterozygous한 CCR5를 가진 분이라고 한다.

...무슨 소리인지는 이번 포스팅을 마칠 때쯤 이해해보도록 하자.


1. 에이즈란?

내과학 책인 해리슨에서 단일 챕터로 가장 많은 페이지 수를 차지하는 아주 복잡한 질환으로,

에이즈 (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이름에서 보듯이 '후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인 선천적이 아님) 면역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원인은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이다.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그 사실을 모르고 오래 방치하다보면 면역체계 손상이 심해져서 여러 면역 결핍 증상이 나타난다.

즉,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HIV에 감염되면 무조건 에이즈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고, 감염되었지만 치료를 안 받고 한 8~10년 정도 있다보면 면역체계가 망해버려서

평소에 걸리지 않던 폐렴이라든가, 진균감염이라든가, 대상포진도 걸리고, 장염도 걸리고 등등

여러 감염질환들로 고생하는 상태를 에이즈라고 부르는 것이다.

 

2. HIV 감염의 원인

그렇다면 왜 걸리는걸까?

보통은 HIV가 전파되는 가장 큰 원인이 성적접촉이다.

감염인의 경우 피,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에 바이러스 양이 많은데

피부 접촉으로는 옮겨지지 않고 상처 등으로 인해 상대방의 몸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생식기 부분은 헐기 쉽고, 만약 염증이 있는 경우 그냥 피부 장벽이 뚫린 상태이니 몸 속으로 바이러스가 들어가기 쉽다.

물론 한 번 한다고 100퍼센트로 걸리는 건 아니다.

피임도구(콘돔)를 잘 사용하게 되면 체액과 피부가 맞닿지 않아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겠고(하지만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 함정),

감염을 일으키려면 바이러스가 양이 충분하게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왜, 생각해보면 코로나 걸린 사람이랑 같이 있어도 안 걸리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그건 운 좋은 경우에 안 걸릴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운 나쁜 경우에 걸릴 가능성도 늘 있...)

성적접촉이 아니라면 엄마에서 태아로 전파되는 수직감염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산모가 치료 받아서 HIV titer, 즉 바이러스 수치가 충분히 낮으면 걸릴 가능성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모유수유도 전파되는 경로 중 하나인데, 예전에는 모든 HIV 감염 산모에게 모유 수유를 권장하지 않았지만

올해(2024)부터 미국 소아과학회에 따르면, 치료를 받고 있고 체내 바이러스 양을 검출 불가 수준으로 유지하는 산모에게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은 아직 모든 HIV 감염인은 모유 수유가 금기인 듯하다.

그 외에는 마약이 성행하는 국가에서는 주사기 돌려쓰다가 걸리기도 하고,

의료진들의 경우 HIV 감염인을 처치하다가 바늘에 찔리는 경우 감염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예방적 항바이러스제를 먹고 피검사를 즉시, 6주, 3개월, 6개월 째 해야한다.)

수혈로 옮겨지는 경우도 옛날에는 있었다는데, 요즘은 헌혈 시 검사를 열심히 하니까 드물다고 한다.

cf. 의학의 특징: 늘 없다! 있다!로 이야기 하지 않고 가능성이 적습니다~ 가능성이 많습니다~ 라고 약간은 모호하게 말한다.
조금 짜증이 나는 화법일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100%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확률게임인 경우가 많아서...

 

감염되지 않는 경우는 기침이나 재채기, 손잡기, 대소변 접촉, 눈물, 밥 같이 먹는 거, 모기 같은 곤충 물림 등등이 있다.

그래서 HIV 감염인이 나오는 영화에서 보면 감염인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밥도 같이 먹고 그런 장면이 꼭 나오는 것 같다.

 

3. HIV 감염의 증상 및 경과

HIV 감염 후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급성 감염기 → 무증상기 → 증상기' 순서의 경과를 보이게 된다.

의사 국가시험에서는 급성 HIV 감염이 종종 나오고,

실제 임상에서는 무증상기의 환자분들을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1) 급성 감염기

  급성 HIV감염이 국가시험에 자주 나오는 이유는 증상이 굉장히 비특이적이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기 등의 일반적인 바이러스 감염과 증상이 비슷하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발진이 생기기도 하고, 림프절이 커지기도 하고, 설사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랑 보는 실기 시험에서 HIV 감염이었는데 감기입니다! 라는 경우가 가끔 있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 시기는 특별한 치료를 안 해도 1~6주 정도 후면 증상이 괜찮아진다.

  증상이 6주 쯤 간다면 병원에 가보겠지만 1주 만에 괜찮아진다면 진짜 감기로 오해하고 끝날 것 같다.

 

 (2)  무증상기

  이 시기는 대략 8~10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증상은 없지만 면역기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시기이다.

  '바이러스'는 생물이라 보기도 애매하고 무생물이라 보기도 애매한 존재인데,

  혼자서 증식하거나 신진대사를 할 수 없고 반드시 숙주, 다른 생물체의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이러스마다 숙주로 삼는 세포 종류가 다르다.

  예를 들어, 간염 바이러스는 간세포가 숙주고, 감기 바이러스는 기관지의 세포를 숙주로 삼고...

  HIV는 CD4+ T cell이라는 면역세포를 숙주로 삼는다.

  간단히 말해 백혈구의 한 종류인데, 우리 몸에 감염성 입자가 들어오면 다른 백혈구에게 신호를 보내 없애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무증상기에는 HIV가 이 안에서 잠복해서 바이러스 수치는 낮게 유지되지만,

  하필 타겟이 되어버린 불쌍한 CD4+ T cell의 수치가 점점 감소한다.

  아래 그림의 파란색이 CD4+ T cell의 수치이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한다.

출처: HIV PHC Manual 2019.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32800241_HIV_PHC_Manual_2019

  나도 경험이 별로 없긴 하지만 임상에서는 무증상기의 환자분들을 많이 보는데,

  다른 수술 받으러 왔다가 수술 전 피검사에서 확인되는 분들이 많다.

  수술 중에 바늘, 칼 등을 쓰기 때문에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환자가 HBV, HCV, HIV 등 혈액 매개 감염이 있는지 미리 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3) 증상기

  CD4+ T cell의 수치가 좀 줄어도 큰 문제가 없다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바이러스의 수치가 높아지면서 (위 그림의 빨간색) 각종 감염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감염인 폐렴, 장염, 뇌수막염 등도 발생하지만

  정상적인 면역을 가진 자라면 걸리지 않을 감염인 '기회감염'이 많이 발생한다.

  어떤 자료를 보니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기회를 이용한다'라는 표현도 있던데, 적절한 것 같다.

  참고로 기회감염이 일어나는 다른 경우는 면역이 떨어진 모든 상태로, 항암치료나 자가면역질환 등에서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을 때, 영양실조, 심지어는 피로, 노화에 의한 경우에서도 걸릴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미리 하는 이유는, 기회감염의 종류에 결핵, 대상포진, 칸디다가 있기 때문이다.

  걔네는... 기회감염이지만 생각보다 흔해서...

  가끔 이런 글을 보고 나서 겁먹으시는 분들이 있어서 안심하시라고...

  CD4+ T cell의 수치에 따라 감염되는 질환들이 다른데 아래 표를 첨부해두겠다.

출처: https://www.grepmed.com/images/1261/infectiousdisease-opportunistic-prophylaxis-infections-diagnosis

  또한, 카포시 육종,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여러 종양성 질환과 암도 잘 발생한다.

 

4. HIV 진단

이게 내과학 책인 해리슨이 서술하는 내용과 우리나라 질병관리청 지침이 다르긴 한데,

우리나라가 좀 더 빡세게 검사하니 우리나라 지침으로 소개하겠다.

출처: HIV 익명검진 매뉴얼

HIV 검사는 선별검사확진검사가 있다.

선별검사는 ELISA HIV에 대한 항체를 검사한다.

항체는 생성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2주~3개월 정도) 감염 이후 바로 검사하면 위음성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항체가 반응을 할 수도 있어서 위양성도 꽤 나온다.

따라서 선별검사에서 양성이라면 확진검사를 해야 한다.

선별검사에서 음성이더라도 고위험군이라면 3~6개월 후 다시 검사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에서는 선별검사 1회 양성이면 바로 확진검사를 한다.

참고로 내과학 책에서는 선별검사 2회 양성 이후 확진검사를 하라고 되어있다.

 

확진검사Western blot으로 HIV protein에 대한 항체를 검사한다.

p24, p66, gp120/160, gp41 등등에 대한 항체 중 2개 이상 검출되면 확진인데

하나만 검출되면 초기감염일 수 있어서 한 달 후 재검사를 한다.

여기서 의문; 왜 바로 확진검사를 안 하고 위양성, 위음성이 더 잘 나올 수 있는 선별검사를 쓰는 걸까?
확진검사는 비싸고 오래 걸리고 검체가 여러 개 있으면 더더욱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 전 검사에서 HIV 양성이 떴어도 환자에게 HIV감염이에요! 라고 말하면 안 된다.

확진검사를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진검사는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보건환경연구원 같은 데에 보내야 해서 한 일주일은 걸린다.

인내의 시간...

그 일주일이 정말 지옥일 것 같다.

심지어 한 달 후 재검하세요! 뜨면 지옥의 시간이 늘어난다...

 

5. 치료

사실... 치료제 종류가 좀 많다...

바이러스는 코로나 때도 느꼈겠지만, 변이가 생기고 치료제에 대한 저항성이 금방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한 개의 약을 먹는 게 아니라 기전이 다른 항바이러스제를 2~3개 병용해 저항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기전은 Entry inhibitor, NRTI(nucleoside analogu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NNRTI(Non-nudeosid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Integrase inhibitor, Protease inhibitor 등이 있고

각 종류마다 뭐가 있는지는 교과서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림은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HIV 치료제이다.

출처: https://hivinfo.nih.gov/understanding-hiv/infographics/fda-approval-hiv-medicines

 

치료는 CD4+ 세포 수치와 무관하게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는 것을 권장한다.

즉, 확진검사 결과 들으러 가는 날 약 바로 받게 된다.

그리고 귀찮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차피 당뇨약이나 혈압약이나 진단된 이후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거나...이거나...

안타깝지만 평생 약 먹는 질환은 많다...

심지어 소아 당뇨는 1형 당뇨인 경우가 많아 애기때부터 계속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단지 체감하는 느낌 차이인 것 같다.

아무래도 HIV 감염이나 에이즈라고 하면 무서우니까, 더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옛날엔 무서웠는데 이제는 관리만 잘 하면 되는 만성질환이라 생각하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참고로 치료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90%지원, 10%의 본인부담금은 국가에 실명 등록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지원해준다.

고로 100% 공짜.

 

6. 줄기세포 치료로 인한 완치

자, 이걸 이해하려면 생물학적인 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HIV가 아까 CD4+ T cell 내로 들어가서 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떻게 들어갈까?

바로 HIV 표면의 단백질CD4+ T cell 표면의 단백질결합을 해서 들어간다.

아래 그림의 1번에 보면 결합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HIV의 gp120CD4+ T cellCD4 수용체CCR5 혹은 CXCR4 보조수용체를 활용해서 들어간다.

(복잡하면 일단 CCR5라는 보조수용체가 활용된다! 라는 걸 기억하자)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nrmicro2747 / Engelman, A., & Cherepanov, P. (2012). The structural biology of HIV-1: mechanistic and therapeutic insights.  Nature Reviews Microbiology ,  10 (4), 279-290.

1994년, 성생활이 활발했던 어떤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의 파트너들은 전부 HIV에 감염되었으나 본인은 HIV검사에서 전부 음성이 나왔다고 한다.

이 분을 연구한 과학자들에 의해 보조수용체인 CCR5에 특정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CCR5-Δ32), HIV가 세포에 달라붙지 못해 HIV가 체내에 들어와도 HIV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런 경우를 'HIV 본태성 내성'이라고 한다.

이후 CCR5 외에도 HIV 본태성 내성을 지닐 수 있는 여러 경우들이 확인되었는데, 그건 이번 줄기세포 치료 이야기랑 관련이 없으니 제끼자.

어찌되었든 HIV 치료제는 평생 먹어야 하니까 그냥 유전자 편집을 하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가진 과학자들이 유전자 치료도 시도해보고, 줄기세포 치료도 시도해보았다.

2007년에 Timothy Ray Brown씨가 CCR5 돌연변이가 있는 기증자로부터 골수이식을 받은 뒤 HIV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이후로 올해 7번째로 완치된 사람이 나온 것이다.

(왜 골수이식이냐면 백혈구는 골수의 조혈모세포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인데 왜 이렇게 완치자가 적냐, 를 고민해보면

일단 CCR5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 사람이 골수기증에 동의해야 하고, 

HIV 감염인께서 기증자와 적합한 유전자형을 가져서 이식이 가능해야 하고, 감염인 역시 골수이식 치료에 동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인데 왜 7번째 환자가 화제가 되었냐, 를 따져보면

우리는 같은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한 쌍, 즉 2개가 있다.

엄마에게 하나 받고, 아빠에게 하나 받고.

지금까지는 CCR5-Δ32가 2개 있는 사람, 즉 동형접합(homozygous)인 분을 찾아서 기증을 받아서 치료에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CCR5-Δ32가 1개 있는 사람, 즉 이형접합(heterozygous)인 분에게서 기증받았는데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CCR5 heterozygous인 경우 돌연변이 수용체를 발견하긴 하지만 더 적은 수로 발현한다고 한다 (멘델 유전이 아님).

유럽에서는 1%의 사람들이 동형접합의 CCR5-Δ32를 가지지만, 이형접합이신 분들은 10%정도까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고로 이 케이스가 진짜로 성공적이라면 골수 기증자의 풀을 10배로 늘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운이 좋은건지 이형접합이어도 완치가 가능한 건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연구 결과인 것은 확실하다.


신경과 교수님께서 치매 치료제에 대해 한창 설명하면서 우리의 표정이 뚱 하니까

자기 학생 때 HIV 치료제가 처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 때는 설마 HIV가 정복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만성질환으로 관리하는 수준이 되었다면서

치매 치료제도 지금 반응은 설마, 하지만 너네가 내 나이가 되어보면 정복된 질환일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과학의 발달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희망적인 발전이 많았으면 좋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