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실습을 돌 때, 건강검진을 제때 안 해서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는데 말기암으로 오신 분이 계셨다.
그 분은 4기였는데, 다행히 암 종류가 4기라도 생존율이 나쁘지 않은 암이었다.
심지어 항암제도 잘 들어서 (보통 4기는 수술을 하지 않는데) 항암치료 후 수술까지 했었다.
잘 살고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번 글에서는 암의 병기에 대한 공부를 좀 해보고자 한다.
0. 암의 병기(stage)란? vs 등급(grade)과의 비교
'병기'란 병의 진행 정도나 단계를 의미한다.
암의 병기란 당연히 암의 진행 정도를 의미하게 된다.
모든 암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암마다 병기 설정 방법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병기라도 병의 심각성이 다르다.
그...수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췌장암 1기의 5년 생존율이 유방암 3~4기 5년 생존율과 비슷할 것이다.
또한 갑상샘암은 5년 생존율이 4기여도 너무 좋아서 10년 생존율을 따진다.
병기 자체는 어려운 용어는 아니지만, 암의 '등급(grade)'와 헷갈리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암의 등급은 조직을 떼어 보았을 때 얼마나 공격적인 암인지를 판단하는 지표이다.
즉, 조직검사 이후에 알 수 있는 내용이다.
Grade 1에서 4까지 있는데, 한국어로 1등급, 2등급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덜 공격적인 것이 저등급, 공격적인 것이 고등급이라 부른다.
"저등급=분화가 좋다(고분화)=조직의 모양이 정상과 비슷하다=덜 공격적이다"
"고등급=분화가 나쁘다(저분화/미분화)=조직의 모양이 이상하다=공격적이다"
...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저등급이 고분화고 고등급이 저분화라서 또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분화'가 영어로 differentiated이다.
differentiated는 식별하다, 차이가 생겨나다, 분간하다 뭐 이런 의미라서
세포가 잘 식별되면 → 고분화 → 정상세포에 가까움 → 덜 위험함 → 저등급
세포가 잘 식별이 안 되면 → 저분화, 미분화 → 비정상임 → 위험함 → 고등급
...의 흐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러한 암의 등급은 특정 종류의 암에서 병기를 결정하는데 쓰인다.
막 모든 암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암의 병기를 나타내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1기~4기처럼 숫자로 나타내는 방법과, TNM 병기로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도 SEER summary staging이라는 것도 있고
암의 종류별로 부인과암은 FIGO staging, 림프종은 Ann Arbor staging 등이 쓰이기도 한다.
1. Number staging system (숫자 병기, 0기, 1기, 2기, 3기, 4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있는 암의 병기이다.
0기부터 4기까지로 나뉘고, 로마자로 쓰기도 한다.
(Stage 1 = Stage I, Stage 2 = Stage II, Stage 3 = Stage III, Stage 4 = Stage IV)
사실 이 병기는 추후 설명할 TNM staging보다는 쓸모가 적지만,
사람들이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다른 병기로 암을 표현하더라도 '이러이러한 범주는 1기이다'라고 꼭 분류해준다.
나누는 기준은 암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얼마나 멀리 퍼졌냐를 기준으로 하여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진다.
Stage 0, 0기: 암이 아니다. 근데 암이 될 것 같이 좀 이상한 세포가 그 자리에 있다. in-situ라고도 불린다.
- 자궁경부암의 CIN이 stage 0에 해당한다.
- 보통 아무 조치 없이 지켜보지만, 자궁경부암의 경우 암이 될 시 예후가 안 좋고 수술이 불가한 경우가 꽤 생기기 때문에 Stage 0에서도 수술적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Stage I, 1기: 암이 작고 원발 부위에 국한되어 있다.
- 예를 들면, 간암 1기라고 하면 어디 다른 데로 안 퍼지고 간 내에 있는 2cm 이하의 종양이다.
- 그렇지만 위암, 담낭암 등의 경우는 암의 크기는 특별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걔네는 원발부위에 '국한'되어 있느냐만 병기설정에 중요함...
Stage II, 2기: 1기보다 크지만 주변 조직까지 퍼지지는 않았다.
- 대부분은 림프절을 침범하지 않은 상태인데, 암의 종류에 따라 림프절을 침범한 것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막간 설명: 림프절은 무엇일까?
우리 몸에는 피가 흘러흘러가는 혈관처럼 림프액이 흘러흘러가는 림프관이 있는데
그 중간중간에 덩어리로 되어있는 림프절이 있다.
림프액은 면역세포가 많고 온 몸으로 흘러흘러가니까
림프절에 침범이 있다는 것은 널리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림프절 침범은 안 좋은 거다.
Stage III, 3기: 암이 크고 주변 조직, 림프절로 침범한 상태이다.
Stage IV, 4기: 암이 원발 부위가 아닌 곳으로 퍼진 상태이다.
- 흔히 전이암이 발견되었다, 라고 한다.
가끔 암의 종류에 따라 Stage 3B처럼 알파벳을 추가해 각 병기를 더 세분화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덩어리가 생기는 고형암이 아닌 혈액암의 경우는 숫자 병기가 위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2. TNM staging (=AJCC staging)
가장 많은 암이 사용하는 방법이고,
이를 기반으로 치료법도 세분화 되어있다.
AJCC(American Joint Committee on Cancer)가 정리하고 개정하기 때문에 AJCC staging이 맞는 표현 같지만
TNM staging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T, N, M은 각각 아래와 같은 뜻을 가진다.
T: 종양의 크기 혹은 종양의 범위를 뜻한다.
- T0: 종양의 증거가 없다.
- T1~T4로 갈수록 종양이 커지고 더 깊게 침범한다.
N: 국소 림프절로의 전이 정도이다.
- N0: 림프절 침범이 없다.
- N1~3: 있다. 더 멀리멀리 퍼질수록 숫자가 커진다.
M: 원격 전이가 있다.
- M0: 없음
- M1: 있음
이걸 조합해서 'T1N1M0', 'T3N0M0' 뭐 이런 식으로 병기를 설정한다.
...복잡하죠...?
심지어 더 복잡한 것은 어떻게 병기를 설정했는지에 따라 앞에 아래와 같이 접두어가 붙는다.
c: 임상적인 진단. X-ray 찍고 피검사 하고 이런 과정으로 결정한 병기이다.
p: 수술 이후 병리적 검사를 통해 결정된 병기이다.
y: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은 이후의 병기이다. (yc, yp처럼 단독으로 쓰이진 않음)
r: 재발했을 때의 병기이다.
a: 부검으로 발견된 암의 병기이다.
3. SEER summary staging
한국어로 '요약병기'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앞서 설명한 숫자병기와 비슷하게 암이 기원한 원발 부위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퍼졌는지를 의미한다.
숫자병기보다 좀 더 자세하고, TNM 병기보다는 포괄적이고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0: in situ. 종양이 발생한 자리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1: 국소적이다. 장기 내에서만 있다.
2: 장기의 벽이나 경계를 뚫고 주변 장기나 조직을 침범했다.
3: 림프절 전이가 있다.
4: 2번과 3번이 둘 다 있다.
5: 주변 장기 침범이 불명확하거나 림프종처럼 2~4번 범주를 쓸 수 없을 때 사용한다.
6: 전이가 있다.
9: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환자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진료 전 사망한 경우,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 등에서 쓰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요약병기가 숫자병기보다 명확해서 더 나은 것 같은데 왜 덜 쓰이는가 의문이다.
의사들이 쓰기엔 너무 뭉뚱그려져 있고, 환자들이 이해하기엔 어렵나...?
4. 그래서 각 암의 병기 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국가 암 정보센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링크: https://www.cancer.go.kr/lay1/program/S1T211C223/cancer/list.do)
제일 정확한 건 NCCN guideline 등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로그인 필요, 근데 회원가입에 딱히 신분의 제한은 없는 듯?)
모두가 영어로 된 병기를 읽고 이해하기는 어려우니까
국가 암 정보센터에서 원하는 암을 클릭해서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해당 홈페이지에 정확한 병기에 대한 설명이 없는 암도 좀 있다.
그렇지만 치료방법, 생존율 추이 등도 함께 나와있어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에 좋은 것 같다.
혹시 영어를 잘 한다면 Cancer Research UK라는 아래 사이트가 더 좋다.
(링크: https://www.cancerresearchuk.org/about-cancer/type)
해당 링크에서 원하는 암을 선택 후, stage를 누르면 무슨 stage를 쓰는지에 대한 설명 링크와 함께
흔히 말하는 1기에서 4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이 나와있다.
심지어 TNM staging 선택하면 그림도 그려져 있어서 이해하기 좋다.
그래서 내용을 요약하면,
암마다 병기설정이 다르다.
3~4기라도 무슨 암이냐에 따라 생존율은 다르다.
병기 설정은 숫자 병기가 가장 간단하지만, TNM이 제일 널리 쓰이고 복잡하다.
그 외 다른 병기를 사용하는 암 종류들이 있다.
몇 기 암인지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암 상태에 따른 완치율과 사망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정확한 정보이고,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