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삼체』를 읽고: 물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소설

미레티아 2025. 2. 3. 20:44
반응형

삼체 표지. 출처: 예스24

지난 12월,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에 읽었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가 '삼체'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했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좀 해줬는데 세계관이 흥미로워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상호대차를 하는 노력까지 해 가면서 세 권을 다 구해서 읽었다.

 

책은 1, 2, 3권의 주인공이 다른 옴니버스식 구성을 띠고 있다.

1권은 세계관 소개 및 사건의 발생과 배후에 대한 이야기이고,

2권은 그 사건을 해결하는 지구인의 이야기이고,

3권은 사건 이후에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구인이 생존을 도모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1권이 제일 마음에 들었지만 과학에 배경지식이 없는 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고,

2권이 가장 소설 같았고 어떤 분야에 있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줄거리였다.

3권은 몇몇 사람들에게 2권에서 끝내는 게 나았겠는데...?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고 흥미로운 묘사가 많아 추천한다.

 

그럼 이제부터 줄거리를 스포하면서 설명해보겠다.

줄거리는 박스 안에 있으니 박스를 후딱후딱 지나가면 그래도 덜 스포를 당할 수도...?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항성이 3개인 행성이 있다. (즉, 태양이 3개인 느낌...)
이 행성을 소설에서는 '삼체'라고 부른다.
푸앵카레의 증명에 따라 행성이 3개면 그 궤도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행성은 언제는 태양과 가까워서 매우 덥고 난리가 나는 세계가 되고,
언제는 태양과 멀어져서 모든 것이 얼어붙는 세상이 되고,
또 언제는 궤도가 안정적으로 돌아서 지구처럼 생명이 살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딱 살기 좋은 상태를 '항세기', 그렇지 않은 상태를 '난세기'라고 하는데
문제는 궤도를 알 수 없으므로 항세기와 난세기가 얼마나 유지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체인들은 난세기가 오면 온 몸의 물을 탈수해서 삐쩍 마른 상태로 본인을 저장하다가
항세기가 오면 다시 물을 빨아들여서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약간...완보동물인 곰벌레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골디락스 존에 해당하지도 않는 행성이 문명을 가진 생명체를 가졌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소설에 굉장히 많은 기술들이 허구이므로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사실 뭐... 초끈이론도 사실상 폐기되었다가 살아났다가 그러고 있고

의외로 소설이 쓰여진 시점이 10년이 넘어서 중간에 과학이 많이 발전했기에

물리학과 함께하는 물리학적인 소설이지만 '소설'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삼체 세계는 항세기 동안 열심히 문명을 발전시킨 결과, 엄청난 과학기술을 갖췄고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고민하면서 우주의 신호를 수신하다가
항상 항세기 상태인 태양계의 지구에서 온 정보를 수신하게 된다.
최초의 정보 수신자는 지구인들에 대한 동정심(?) 같은 거로 더 이상 정보를 보내지 마라,
너네가 정보를 보내면 너네의 위치가 노출되며 우리 세계 사람들이 공격하러 갈 것이라면서 경고문구를 보내지만
하필이면 지구의 정보 수신자는 지구인에게 정이 다 떨어진 예원제였고.
지구의 위치를 노출시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벌어지지 않은, 벌어지기 힘든 일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계획을 하는 것이

예전에는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에는 토의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체를 추천받았던 동일한 모임에서 AI와 법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수다를 떨었는데

규제가 미리 없었기에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걸 수습하는 식으로 법이 생성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해도 이미 발생한 사건 및 문제점에 대해서 완벽히 수습이 불가하기에

미리미리 우리 사회가 미래를 예측하고 대화를 하며 규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예원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 아버지를 잃은 과학자이다.
중국의 정말 많은 소설에서 문화대혁명 이야기가 나오는데,
얼마나 정이 떨어졌으면 지구를 멸망하게 하고 싶을까...를 납득할 수 있다.
어쨌든 예원제와 그 동료들은 ETO라는 기구를 꾸려서 삼체세계에 협조한다.
삼체인은 11차원의 양성자를 접고 펴서 '지자'라는 양성자를 두 개 지구로 던지고
이 지자는 지구 곳곳을 관찰하고 과학실험을 망치는 업무를 남몰래 수행한다.
지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플랫랜드 이야기를 떠올렸다.
3차원에서 2차원을 보면 내부 속까지 훤히 보이니까
그런 개념으로 11차원에서 다른 차원을 내려다보면 아주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를 망치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지 의문을 갖고 1권의 주인공인 나노 소재 과학자, 왕먀오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왕먀오는 아주 열심히 알아봐서 ETO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노 물질일 이용해 ETO를 와해시킨다.
그 결과, 지구의 사람들은 ETO 내부 정보를 통해 삼체 세계의 존재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전부 알게 된다.

약간 빅브라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세계를 감시할 수 있다니...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긴 하지만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삶이 매우 불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2권이 시작된다.
삼체가 지구를 공격하려고 오고는 있고,
뭘 해야는겠고,
그렇지만 도피하자니 형평성의 문제가 생겨서 법적으로 금지해버렸고,
우주군을 만들어 대항해보려고 노력도 해본다.
그리고 그 외 곁따리로 진행되었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프로젝트가 2개 있는데,
각각 2권의 주제와 3권의 주제가 된다.
2권의 주제는 면벽자 프로젝트이다.
지자가 지구 곳곳을 감시하고 있는데 감시를 못 하는 것을 하나 꼽자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삼체에게 들키지 않고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구상해서 뽀짝뽀짝 노력한 다음
짠! 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물론 뽀짝뽀짝 노력에 해당하는 예산은 엄청 많이 배정되어있으며
심지어 예산 집행 이유를 설명하면 들키니까 안 설명해도 된다.
총 4명의 '면벽자'라고 정하게 되는데
2권의 주인공 뤄지는 훌륭한 학자도, 정치인도 아닌 자신이 왜 뽑혔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ETO의 정보를 통해 삼체가 뤄지를 죽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 저 사람이 중요하구나! 하고 뽑혀버린 사람이다.

2권에 등장하는 여러 정치상황과 사람들의 반응이

꼭 지금 세계의 인터넷을 보는 것 같아서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서로 비난하고, 무시하고, 남 탓 하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라는 책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뤄지는 예원제를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뤄지보고 우주사회학을 연구하라고 하면서 두 가지 공리를 알려준다.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나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

그런데 만나본 적 없는 외계 문명이 나를 죽이러 오는지, 아니면 나와 공존하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그럼 쟤랑 같이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쟤도 나와 비슷하게 나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예원제가 말한 공리들에 따르면
본인의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른 문명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장땡이다.

2권 말미에 뤄지는 삼체랑 협상을 한다.
우리를 공격하러 오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삼체 문명의 위치를 전 우주에 뿌리겠다고.
누군가는 그 정보를 받고 삼체를 멸망시킬것이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지구도 위치가 드러나니까 이후에 멸망하겠지만
어쨌든 물귀신 작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건 지구이다.
그래서 삼체가 공격 안 하고 협조한다고 한다.

소설의 진행 상 굉장히 완벽한 결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삼체인이 너무 쉽게 협조하는 것이 아쉬웠다...라고 느꼈는데

3권 읽으니까 역시 협상과 동맹은 어렵고 불안정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3권은 계단 프로젝트와 사랑과 멸망 등등의 이야기이다.
계단 프로젝트는 삼체로 첩자를 보내는 이야기인데, 인간을 보내기에는 기술이 부족해서 뇌만 보낸다.
물론 그러려면 이론상 죽어야 하므로 수명이 얼마 안 남은 분들 중에서 누구 뇌를 보낼지 고민하게 되고
암 투병 중이던 과학자 윈톈밍의 뇌가 보내졌다.
다행히 그 뇌는 삼체가 잘 포획해서 다시 인간처럼 만들어주었다.

주인공(뇌만 날라가신 분의 친구) 청신은 동면을 했다가 깨어나서
삼체의 위치정보를 우주에게 뿌리는 검잡이 뤄지 이후 새로운 검잡이로 뽑힌다.
그런데 삼체 생각에 청신은 삼체 세계 뿐 아니라 지구를 위협하는 행위는 안 할 것 같아서
검잡이가 교체되자마자 지구를 공격한다.
예측과 일치하게, 청신은 공격정보를 받았지만 위치정보를 우주로 뿌리지 않았다.

청신의 심리 묘사는 마음에 안 들었다.

아기를 보고 어머니의 마음이 들고 모성애의 마음과 함께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순 없다 뭐 그런 묘사였는데

청신은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고, 지구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던 과학자였기에 좀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마음 약하고 다정하고 인류애가 넘치는(결국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선택이긴 한데 인류애가 넘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인물을 묘사한 것 같기는 한데

묘사된 인물의 서사와 그 인물의 심리 상태가 일치하지 않는 느낌이고 신파적인 느낌이 들었달까.

삼체가 지구의 과학시설을 망가뜨리고 모든 지구인을 호주에 이주시켜 가둬놓는 정책을 펼치는 와중에
과거 우주군이었고 현재 우주에 떠돌아다니며 문명을 이어가려던 사람들이 삼체가 지구에 대한 공격을 시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삼체의 위치정보를 우주로 뿌린다.
그 결과, 삼체는 지구에서 철수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명에 의해 삼체도 파괴된다.

지구의 위치도 같이 노출이 되었으니
이제 사람들은 미지의 문명이 언제 공격할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윈톈밍(뇌만 날라가신 분)이 청신을 만나고 싶어하고
삼체는 자신들의 정보가 알려질까봐 대화를 극도로 제한하지만
윈톈밍은 은유적 표현이 담긴 동화를 통해 해결책을 알려준다.

지구인들은 한 가지 빼고 모든 걸 해독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지만
해독하지 못한 한 가지가 너무 치명적이었고,
태양계는 차원 공격을 받아 2차원으로 떨어져 사라진다.

청신과 친구 AA는 뤄지가 광속 우주선에 태워서 멀리멀리 보내버리고
청신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던 인간도 만나고 우주의 비밀도 이해하고
그렇게 우주의 종말이 멸망이 아닌 모두의 공존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뤄지가 광속 우주선에 청신을 태워서 보내버린 후의 부분은 외전 느낌인데

소설보다는 과학책 느낌으로 이런 이론이 있고~ 그래서 어떻게 될 거고~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같은 내용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다.

결국 지구도 망하고 우주도 망해? 느낌이라...

그리고 러브라인 쳐돌이는 아니지만 저렇게 고생 좀 했으면 윈톈밍과 청신을 이어줄만 하지 않나 싶었는데
안 이어줘서 조금 슬펐음....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왔다던데,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뇌만 우주로 가셨던 윈톈밍 시점 뒷이야기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삼체를 멸망시킨 문명이나 지구를 멸망시킨 문명의 시점으로 풀어주든가...

걔네는 삼체처럼 이주라는 뚜렷한 목표도 없으면서 걍 암흑의 숲 이론에 따라 냅다 멸망시킨건가?

그 문명은 어쩌다 그렇게 호전적이게 되었을까?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고 관련해서 꿈도 굉장히 많이 꿨다.

묘사가 많아 상상하기 수월했고,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내용이 흥미로웠고,

아포칼립스적 정치 및 사회 현상도 줄거리가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어쩌면 무겁지만 현실적이지 않아 부담없이 봤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