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미키17」을 보고 나서: 현실 같은 현실 아닌 이야기 (스포 O)

미레티아 2025. 3. 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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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평점
8.5 (2025.02.28 개봉)
감독
봉준호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아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레트, 마크 러팔로


최근에 소설 『삼체』를 흥미롭게 읽었어서 또 다른 재미있는 SF 소설이 없다 찾아보다가 『미키7』이라는 소설이 굉장히 상위권에 올라와있는 것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동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서관에 예약이 2명 이상씩 걸려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인기지?'라는 의문에 찾아보니 곧 영화로 나온다는, 심지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나온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기다리다가 개봉 둘째날에 잽싸게 보았다.

 

「미키17」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애매한 중간선을 잘 탄 느낌이었다.

소재 자체만 두고 보면 디스토피아적이고 대중적이진 않은데,

줄거리 자체가 현실을 비추어볼 수 있는 요소가 굉장히 많아서 공감도 잘 되고 흥미롭게 보았다.

대사도 한국인이 쓴 각본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또한, 화면 구성상 많은 장소가 나오지 않아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었는데

다 보고 나서야 '생각보다 세트장을 몇 군데 안 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보았다.

반전과 같은 요소는 없었고 줄거리도 도덕률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뻔한 내용이지만

짜임이 훌륭해서 마음에 든 영화였다.

영상물 등급만 쪼끔 올리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15세 관람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성적인 표현이나 잔인함 등이 꽤 수위가 있었다.)

 

※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키17 영화 포스터

보육원 친구이지만 심성이 약간 나쁜 티미와 함께 사채를 빌려 마카롱가게를 열었다 쫄딱 망한 미키는
대부업자를 피해 외계 행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에 타려고 한다.
그런데 해당 우주선의 최고경영인 마샬은 종교적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비록 선거에는 패했지만) 열성인 지지자들이 굉장히 많다.
(cf. 극 중 이름이 마샬이다! Martial law는 계엄령인데!!) 
티미는 항공기 조종 면허를 따서 우주선에 타는 자리를 금방 얻는데
미키는 별 재주도 없고 열정 지지자도 아니라서 (상세 설명도 안 읽고) 아주 극한 직업에 지원하게 된다.
바로 계속해서 죽는 것.
실험쥐처럼 다양한 상황에 노출해 죽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방사선에 노출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외계 행성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이 잘 되었는지 등등 여러 임무를 수행한다.
물론 기억과 신체정보는 잘 저장해두었다가 미키가 죽으면 인체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서 다시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미키가 죽어도, 새로운 미키가 생겨나니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다들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프린팅 기술이 100%는 아닌건지, 프린팅 될 때마다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17번째로 프린팅된 미키는 소심하고 찌질한 미키인데
외계 행성에서 공벌레를 닮은 외계생명체를 포획하는 임무를 하다가 크레바스에 빠져서 죽을 뻔했다.
그런데 외계생명체가 구해줘서 여차저차 다시 돌아왔는데, 미키18이 방에 있었다.
미키18은 약간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당하고는 살지 못하는 다혈질 미키였다.
법적으로 프린팅 된 인간이 둘이면 안 되기 때문에 그의 연인과 친구들은 숨겨주려고 노력했지만
미키18이 미키17이 겪은 일을 듣고 마샬을 죽이러 가다가 멀티플이라는 것을 들키고,
외계 생명체를 해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아직 개발단계이긴 하지만 과학자의 통역기를 통해 협상을 한다.
그 과정에서 미키18이 희생하며 마샬을 죽이게 되고,
이후 인체 프린팅이 금지되면서 미키17은 미키 반스로서 살아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미키17과 18이 만나는 장면 이후부터 좀 걱정을 했다.

화면에 나오는 자가 17인지 18인지 어떻게 알지?

그걸 알아야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을텐데...

그런데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미키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 찌질한 17냉소적인 18을 정말 다르게 연기해주어서

서 있는 자세만 보고도, 얼굴 표정만 보고도 17인지 18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도 약간 다른 느낌이 들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미키의 여자친구로 '나샤'가 등장하는데, 해당 배우는 흑인인 '나오미 애키'가 맡았다.

영화 후반부에 외계 생명체를 다 죽여버리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마샬에게

'우리가 외계인인데 왜 쟤네에게 외계인이라 그러냐, 쟤네는 이 땅에 미리 있었고 잘 살고 있었는데'라면서

사자후를 날리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장면에 감독이 일부러 흑인 배우를 내세웠는지 궁금했다.

서양의 백인 중심적이었던 역사를 보면 타 지역을 식민지배하며 원주민을 쫓아낸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를 은근히 비판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따지면 미국 원주민 외모의 배우를 내세우는 것이 가장 적절하기는 하겠지만 별로 없으니

탄압받았던 유색인종을 그런 역할을 넣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전적으로 완벽한 '카이'라는 여자도 나오는데

마샬이 그녀를 식사에 초대해서 번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외계 행성에서 번식을 해서 인류를 늘려야 하는데 유전적으로 좋은 자가 번식을 하는 게 낫다 뭐 이런 취지)

그 때 카이가 '당신은 내가 자궁으로밖에 보이지 않냐'고 반박을 하는데 통쾌했다.

탄핵되었던 박 모씨 정부 시절 행정자치부에서 만들었던 '대한민국 출산지도'도 떠오르면서...

근데 자세히 보면 카이라는 배역은 양성애자인 것 같은데,

그걸 독재자 마샬이 알았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완벽한 유전자! 번식에 적합한 유전자!라고 그래도 떠들었을까?

영화 후기를 쓰며 생각해보니 이 영화에서는 똑똑하고 능력있는 여자가 꽤 많이 나온다.
남자는... 찌질한 미키17, 냉소적 미키18, 친구팔아먹은 티미, 독재자 마샬...
아 물론 나샤 상사분인 남성분은 상황 판단을 잘 하는 분으로 맘에 들었다.

 

정말 개봉 시기가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와이프에게 휘둘리고, 방송을 통한 정치 선전에 관심을 매우 기울이는 독재자 마샬의 모습이

마치 수많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치인을 섞어놓은 기분이었다.

윤 모씨와 트 모씨...ㅋㅋㅋ

같이 본 가족 중 한 명은 확신에 차서 '계엄 이후에 만든 게 틀림없어' 혹은 '국민들이 모르는 정치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라고...

찾아보니 2022년에 촬영을 마쳤다는데,

23~24년에 개봉했으면 감흥이 덜 했을 것 같다.

그런데 한강의 노벨상 수상도 그렇고, 이 영화 미키17도 그렇고. 참 타이밍이 기가막힌 것 같다.
역사는 돌고 돌고, 사건이 터지기 전에 몇 가지 낌새가 있는 것을 그 역사를 아는 사람이 잘 잡아내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같이 보았던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 어떻게 실험실 관리를 저렇게 하냐, 라는 의견도 나왔는데

그런 점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고른 것 같고

사실 우리는 모르지만 비슷한 일이 자행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연구실 몇 군데 다녀보았는데 IRB를 완벽히 지키는 곳 없고, 

초짜인 대학원생에게 기기 관리나 실험을 단독으로 맡기는 일도 많고,

재현성을 확인 안 하고 논문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꽤 있고,

데이터 다루는 연구는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그걸 바꿔가면서 원하는 결과 비스무리하게 나올 때까지 하는 곳도 있고...

남들이 모른다고 엉망으로 하는 것은 사기치는 것이라 난 생각한다.

그래서 늘 디테일을 따지다보니 나는 힘들지만.... 흑

 

아, 그리고 그런 이야기도 했다.

같이 살려면 미키17이 낫냐 18이 낫냐?

참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좀... 찌질하지만 다혈질인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낫지 않나?라고 생각해서 처음에 미키17을 골랐는데

생각해보면 17이 어디서 호구 당해서 오면 정말 답답할 것 같다.

그런데 미키18 같은 사람이 내 편이면 나 대신 화내주고 진짜 좋기는 하다.

내 편이 아니면 정말 극악의 진상손님이기는 하지만,

일단 나샤에게 하는 것이나 마지막에 희생하는 거 보면 인간미 있는 친구이다.

그래서 난 모든 사건을 다 겪은 미키17이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미키18이 죽고 나서는 미키17도 배운 점이 있는지

뭔가 당하는 상황에서는 '미키18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상상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무작정 당하는 호구가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왜 원작(미키7)과 달리 미키를 10번이나 더 죽였냐에 대한 질문에

17에서 18세 넘어가는 그 성장의 시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확실히 마지막 장면을 보면 미키는 성장했다.

나도 미키처럼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만 저런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싶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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