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고: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

미레티아 2024. 4. 29. 18:26

어릴 때는 판타지 소설을 좀 봤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면서는 적게 보는 것 같다.

아니, 사춘기 때부터 나는 과학책을 열심히 봤기 때문에 애초에 소설을 안 보고 살기는 했다.

소설을 안 좋아했던 것은 그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저 사람은 너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게 정해진 주인공이라 맘에 안 들고,

쟤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바보같은 처신을 해서 맘에 안 들고,

나이가 들어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입체적인 시각에서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소설을 좀 읽는 것 같다.

물론 '좀' 읽는 것이지 많이 읽지는 않는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서점 평대에 깔려있는 알록달록한 표지를 보고 처음 접했다.

과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공부한 여자로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의 표지는 좀 달랐지만 운 좋게 두 권이 통째로 있어서 둘 다 빌려와서 읽게 되었다.

 

초반부에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여성에 대한 과학계의 차별에 대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멋있었다.

약간 성격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 느낄 정도로 불편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보면 그 정도 깡이 아니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경파들이 존재하니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동료 과학자인 남자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는 작가가 굉장히 사려깊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자칫하면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만나는 순간부터 뭔가 결이 달라지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렇게 되지 않고 계속해서 여자가 주인공이게 글을 썼다.

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 '밤에 피는 꽃'이 있는데, 그 드라마도 마지막회에서 여자주인공을 남자주인공에 속박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 아예 떠나버리는 전개를 가지던데 그런 느낌이랄까.

 

다만 점점 너무 판타지적이고 우연한 요소들이 많이 생겨서 소설은 소설이구나 싶었다.

일단 강아지의 행동이 너무 판타지적이다.

또한 과거의 인연이 현재에 굉장히 우연찮게 이어지고, 그게 주인공의 삶이 긍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런 소설적인 요소가 없었으면 너무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현재도 과학계이든, 의학계이든 존재하는 성차별은 우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의 모 관계자가 아직도 여자 의사는 남자 의사의 0.7인분이라고 표현하는 세상인데...흑

소설은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주는 것에서 카타르시스가 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뭔가 좀 말은 안 되지만 얼렁뚱땅 재미있게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솔직히 재미있었다.

중간에 이런 전개는 좀 아닌듯 하면서도, 주인공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여자라고 받는 장학금이나 혜택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혜택 없이 실력으로 경쟁하겠다, 그런 마음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러지 말고 받아서

차별 많은 세상에서 꼭 성공해서 

그런 장학금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게 하라고.

 

나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으면 순응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행위를 하는 것 보면 순응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