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작심삼주 오블완 챌린지를 마치며: 13년차 블로거의 회상

미레티아 2024. 11. 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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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니, 그때는 사실 강제로 생성이 되었다.
나는 이전까지 다음(Daum) 계정만 있다가 초5때 영재학급에 합격했는데
네이버 카페에서 공지 및 과제를 받는다고 해서 네이버 아이디를 처음 만들었다.
그런데 네이버는 계정을 만들면 자동으로 블로그가 개설이 되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당시에 '블로그씨' 질문이 매일 생성이 되어서 좀 신기했었다.
그렇지만 다음의 하드 유저였기 때문에 (키즈짱에서 게임하고, 아고라(눈팅), 카페 활동 등)
생성이 되든 말든 별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꾸준히 해보게 된 것은 2011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왜 시작했는지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열심히 돌이켜보면 그냥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 같다.
서로이웃하고, 댓글달고...
주된 컨텐츠는 곰인형을 꾸며서 사진을 올리는 것이었다.
덜 주된 컨텐츠는 공부한 내용이나 책에서 본 내용에 대해 글을 썼다.
그런데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래서 공부 관련 내용을 메인으로 쓰기 시작했고,
다음 view라는 곳에 글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다음 view는 지금은 사라진 서비스인데, 주제별로 글을 모아서 볼 수 있었고
자기가 해당 분야에서 몇 위인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 때 티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상위 블로거들이 대부분 티스토리 블로거였기 때문에...
 
티스토리 블로그는 완전 신세계였다.
네이버 블로그 디자인은 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수정해야 하는데,
티스토리는 html을 수정해서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게 티스토리 욕심이 나서 초대장을 받기 위해 열심히 눈팅을 하고 다녔다.
참고로 요즘은 초대장 없이도 티스토리가 가입이 되는데
당시에는 이미 티스토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제공한 초대장이 필요했다.
 
마침 2012년 연말에 새해 기념으로 초대장을 뿌리는 많은 블로거가 있었는데
조건이 덜 까다로운 어떤 분에게 선착순으로 들어서 초대장을 받았다.
누구신지 기억이 안 나네요... 아직도 블로그를 하고 계시려나 궁금하다.
그래서 2013년 1월 1일에 네이버 블로그의 글을 하나하나 복사해서 티스토리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면서 우리 곰인형씨의 사진은 그냥 개인소장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2013년이면 중학교 2학년이라 사춘기였다.
곰돌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떠벌리기에는 좀... 그... 나이가 있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도 곰돌이 좋아한다. 귀여운 거 짱이야.)

내 곰돌이: 베폴유 와이트

이후 내 블로그는 공부한 내용을 적는게 메인이 되었다.
아, 물론, 사춘기 때 세상에 대한 불만 표출글도 꽤 썼다.
지금 생각하면 흑역사라서 가끔 날릴까...? 하는 충동도 좀 든다.
그렇지만 단면적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면 성장하는 귀여운 꼬맹이의 외침이라서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도 좀 있다.
어쨌든 그런 불만과 그에 대한 고민들이 쌓여 지금의 내 가치관을 만들었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정말 열심히 블로그를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약간 미친 일정으로 공부했는데,
등교하기 전에 Coursera나 edX를 하나씩 봤다.
(영어로 과학을 공부하면 영어도 공부되고 과학도 공부되겠지?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에...
결론은 과학 영어'만' 늘었다.)
만약 듣고 있는 강의가 없으면 블로그를 썼었다.
학교 가서는 쉬는시간에 과제를 했었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남은 중학교 때 친구가 없다... 자발적 아싸였던...)
하교 후에 학원버스를 타기 전까지 과제를 하거나 블로그를 썼다.
학원 종료 후에 집에 와서 씻고 과제가 남았으면 과제를 하다가 잤다.
 
그 와중에 꼭 좋아하는 블로거의 글은 챙겨보았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터킨터'님의 블로그였다.
독일에서 아들을 키우시는 분이었는데, 독일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당시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성실이 이행하지만 반감이 있었던 나는
그 글들을 보고 독일어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가서도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고... 대학교에서도 독일어 1, 2 수업을 들은...
하지만 지금 할 줄 아는 독일어: Können Sie English sprechen? (=영어 할 줄 아세요?))
또 '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라든가, '산들무지개' 등을 보면서 외국생활에 동경이 생겨 꼭 나중에 커서 유학을 가야지! 생각했다.
 
그러고 이 블로그를 고등학교 입학 자소서에 적었다.
창피하니까 자소서를 공개하지는 못하고,
대략 공부 열심히 했고~ 블로그에 내용 정리도 하고 있고~ 성실하고 배움의 의지가 강하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어쨌든 영재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특목고를 가니 인생이 바빴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수행평가가 굉장히 많았고, 따라가기 벅찬 내용도 많았다.
그 와중에 학원에서는 내 페이스와 관계없이, 내가 이해함과 관계없이 진도를 나간다는 불만 때문에
학원을 안 다니겠다고 선언해서 3년 내내 주말에도 학교에 남아서 공부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는 조금 소홀히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글은 독서 후기였다.
책을 워낙에 좋아했었고, 수업과 관계되어서 읽는 것도 많았고, 도서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서 후기는 생활기록부에 전부 들어갔다.
생활기록부에 독서기록이 들어가는지 사실 몰랐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내라고 하길래
남들은 무슨 책 읽고 내지? 내가 올해 뭘 읽었더라?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블로그글을 통째로 제출했었다.
그 많은 독후감에서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생활기록부에 책 제목과 저자명을 적으신 담임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고1때, 2015년에는 브런치(Brunch) 서비스가 시작하였다.
왠~지 디자인이 세련되었고, 왠~지 작가님이라 불러주고 그러니까 좀 뽀대가 있어보여서
가입을 했다.
지금은 브런치의 분위기가 거의 에세이, 사회비판으로 수렴하였고
나도 내 브런치에는 그런 내용을 적고 있는데
처음에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구분을 두질 않았다.
뭔가 연재글 느낌이 나면 브런치에 쓰고, 아니면 블로그에 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브런치에 작성한 글 중 검색 유입수가 꽤 많은 글이 하나 있어서
그걸 블로그에 썼어야 했다는 후회가 좀 든다... ㅎㅎ
 
그러다가 2017년 고3, 진로 고민이 참 많았다.
영재교를 갔고, 연구하는 꿈이 있었지만 이공계로 가서 잘 살아남을 용기가 없었다.
대학원까지의 학비는? 이공계는 교수 되려면 무조건 유학 갔다와야 하는데 그 돈은 어쩌지?
교수 자리가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교수가 될 수 있을까? 교수가 안 되면 뭐 하지? 
생명과학 관련해서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많기는 하나? 학위가 있어도 이도저도 아니게 되면 어쩌지?
결혼하면 커리어가 끊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의대였다.
의사가 되면 아무리 망해도 나 하나 건사할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니까...
그런 고민이 있던 와중, 고등학교 시절 연구 프로젝트로 나를 지도해주셨던 교수님께서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래와 같이 말했었다.
"너 의대를 가. 가서 공부하다가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때 해도 늦지 않아.
잘 안 풀리게 된다면 우리 연구실 오면 받아줄게"
...솔직히 이공계 교수님께서 의대를 추천할 정도면 의대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늘 생각하는 건데, 인재의 의대 유출을 막으려면 이공계를 잘 대우해줘야 한다.
 
2018년, 재수할 자신은 없어서 명문까지는 아니지만 분위기 좋은 한 의대에 진학했다.
예과 시절, 한가할 때.
열심히 놀고, 국제보건 동아리 활동을 하고, 폴란드 법의학 교실로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당시 국제보건 동아리 홍보팀장이었어서 페이스북에 글은 매주 올리긴 했었지만
내 블로그는 막상 독서 기록을 제외하고는 블로그는 잘 쓰지 않았다.
본과 1~2학년 시절, 바쁠 때.
쓸 시간이 없다.
수업은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시험이 1~2주마다 있다.
심지어 시험을 주로 토요일에 봐서 주말도 반토막났다.
본과 3~4학년 시절, 실습을 도느라 바빴다.
남는 시간은 최대한 자야했다.
안 그러면 과제와 실습을 버틸 수 없었다.
본과 4학년 시절,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국가시험을 떨어질 성적은 아니었는데, 불안이 좀 높은 사람이라
쉽고 빠르게 쓰는 글을 제외하고는 거의 안 쓰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수석졸업을 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 합격해서 주80시간 근무하는 인턴이 될 줄 알았는데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사직을 하였다.
커리어를 쌓아야 할 시기에 1년을 쉰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지금까지 쉼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니 쉬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체력을 기르자는 마음에 쉬었다.
쉬면서 심심하니까 블로그를 다시 쓰게 되었다.
오랜만에 쓰려니까 좀 어려워서 많이 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대학교 때의 연구지도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가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8월부터는 아예 연구원 등록을 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SAS를 하고, 우분투를 깔고, R을 하고, STATA도 하고,
새로운 내용을 많이 배우고, 예전에 했던 것을 까먹어서 다시 찾고 그러다보니
나를 위해,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블로그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티스토리에 흥미로운 챌린지가 떴다. 
작심삼주 오블완 챌린지.
매일 글을 쓰는, 3주간의 프로젝트였다.
해당 챌린지를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요즘 블로그가 유행이라더니만 진짜인가보네?'
그리고 또 든 생각, '대체 3주 동안 매일 글 쓸 주제가 있나?'
나는 내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우연찮게, 3주 전 즈음에 내가 하던 연구가 마무리가 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연구까지 시간이 좀 남았길래 참여나 해볼까~하고 했는데
하루하루 뭔가 오기가 생겨서 계속 하게 되었다.
지금은... 연구 3개를 동시에 진행중이다!
너무 힘들다!
3주만 하는 챌린지라 너무 다행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년에 계속 여기서 연구를 하게 될까? 인턴을 들어가게 될까? 외국 대학원을 지원하게 될까? 외국 의사를 준비하게 될까?
이 블로그의 향후 방향도 모르겠다.
검색가능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 에세이스러운 글은 브런치에 쓸 것 같은데
주제는 진짜 랜덤하게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될 것 같다.
 
일단 내일은 글을 안 쓸거다.
연구해야지.
현 상황과 내 인생과 내 연구가 잘 풀리길 바라며...
이만 누가 읽어볼까 싶은 회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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