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내가 기술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을 때

미레티아 2013. 5. 6. 12:59

초등학교 5학년 사회시간의 일이었다.

우리는 아마 무역의 필요성을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조를 나눠서 어떤 환경을 가진 나라 역할을 했으니까...

게임 규칙을 먼저 설명해보자.

학생들은 종이(자원)을 가지고 원, 육각형, 삼각형, 오각형 등(제품)을

규격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그건 미리 몇 cm인지 알려주었다.)

선생님(소비자)는 그 만들어진 도형을 보고 규격에 맞는지, 모양이 찌그러지지 않았는지,

무슨 종이, 즉 흰 종이나 색깔 있는 종이를 썼는지 등에 따라 물건 값을 지불한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기술은 자, 가위, 컴퍼스, 칼이 있었고,

연필과 지우개는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즉, 연필과 지우개는 기술이 아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각 조에 기술 또는 자원을 나눠주셨다.

그런데 우리조는 흰 A4용지만 잔뜩 받았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뭘 빼먹고 주신 것 아닐까?

하지만 그게 아니고 진짜 자원만 있는 국가가 우리 조였던 것이다.

우리는 기술만 좋은 조가 기술을 주고 종이를 받아갈 때까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내 새끼손톱의 폭이 1cm이니까(이건 초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에 재 본 것이다.)

그걸 이용해서 길이를 잴 수 있고,

컴퍼스 대신에 종이를 좀 잘라서 양쪽에 구멍을 뚫은 후에

한쪽은 연필로 누르고 있어 고정시키고, 한쪽은 연필을 넣고 돌려서 원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육각형 작도 방법은 알고 있어서 그렇게 원과 육각형을 많이 그렸다.

문제는 육각형은 손톱으로 눌러서 잘 찢으면 되는데 원이 문제다.

그리고 내 새끼손톱의 폭이 2학년 때부터 아예 안 자랐을 리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조에 가서 자원과 자, 또는 가위와 바꿀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컴퍼스를 주겠다는 제안은 들어오는데 자와 가위는 안 들어오더라.

우리 조의 손톱 긴 친구들만 고생하고...

컴퍼스를 주겠다는 친구는 선생님에게 가서 우리조의 자원독점(?)을 일렀다.

그래서 뭐, 우리가 관용적인 태도로 바꿔주기는 했다.

이렇게 크기가 안 맞고 잘 잘리지도 않은 것은 가격을 당연히 낮게 책정받았다.

우리조 외교관(?)은 몇 초 빌리기를 제한으로 기술을 가져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선생님이 나라들도 시간이 흐르면 변화하니 다른 것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우리조는 또 자원을 받았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의 종이였지만

기술이 없으니 종이 값이 비싸도 물건 값은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런데 앞조에서 육각형 제품 하나를 들고 종이와 바꾸러 왔다.

그 조는 육각형 도안이라는 기술을 받은 곳이었다.

우리는 일단 크기가 도안과 맞으니 그것을 받아 종이에 대고 몇 개를 그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 게임을 끝냈다.

각 조가 가진 돈을 발표해보니, 육각형 도안이 있던 앞조가 가장 많이 벌었고,

우리조는 못 번 조에 속했다.(꼴찌는 아니었다.)

그 게임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던 것이 다르기 때문에 무역이 필요하다는 점,

우리조처럼 독점(?)을 하는 나라가 있으면 세계가 힘들어진다는 점,

(뭐, 이건 자원민족주의 때문에 일어나는 석유파동이 예시일 것 같다.)

그리고 기술이 중요하다는 점......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나이지리아는 자원이 엄청 많다.

산유국에 청동, 석회암, 납, 아연, 천연가스, 기타 등등.....

그런데 후진국이다.

발전을 못했다.

물론 전쟁과 정치가들이 못된 짓을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기술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이지리아 자원을 나이지리아 사람이 캐는 것이 아니다.

그 자원을 캐서 쓰는 곳도 나이지리아가 아니다.

석유를 정유하는 곳이 있는 곳도 나이지리아가 아니다.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그걸 깨닫고 그 믿음은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가끔 궁금하다.

지금, 중학생이 된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을까.

다시 그 게임을 한다면 지금은 어떤 방향으로 게임이 진행될까.

그리고....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