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출판사
- 민음사 | 1999-03-2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불멸의 작가 괴테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갖가지 문화행사들...
뭐, 표지가 다르긴 하지만 상관없겠죠.
역시 숙제로 한 거라 형식이 조금 다릅니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으려다가 이해도 잘 안 가고 너무나 지루해서 그냥 안 읽은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만 엄마도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번역자의 잘못인건가, 괴테의 잘못인건가. 이번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아마 오기일 것이다. 저번에 못 읽은 것이 너무 아쉬워서랄까. 이번에 읽어보니 솔직히 이 책 앞부분은 좀 어렵다. 점점 갈수록 재미있어지지만 이야기가 베르테르가 그의 친구 빌헬름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기에 다른 소설보다 추측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들도 많다. 그래도 앞 몇 장만 견디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읽힌다.
주인공은 베르테르로, 귀족 출신은 아니지만 일반 서민보다 약간 신분이 높고 능력이 훌륭한 청년이다. 그는 철학적이고 본인의 신념이 확고하다. 기독교 신자이며 자연과 어린아이 등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 큰 줄거리는 베르테르가 이미 귀족 출신 알베르트와 약혼한 로테(롯데라고도 번역된다. 하지만 철자상 로테에 더 가까운 발음이 날 듯하다.)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알베르트의 존재는 베르테르의 사랑에 방해를 준다. 또, 베르테르는 빌헬름의 추천으로 도시에서 한 공작 밑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의 깐깐하고 고지식한 성격에 진저리가 난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C백작이 초대한 파티에서 신분이 낮은 베르테르의 존재를 모두가 불편해하고 그는 파티에서 쫓겨난다. 그 후 다시 로테가 살던 마을 쪽으로 돌아가는데 알던 사람들의 죽음과 범죄 등의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살다가 로테로부터 자주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여행간다는 핑계로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다.
뭐, 베르테르의 열정적인 사랑이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주제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것에 동의하지만 베르테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그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괴테는 이 책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르테르의 입을 통해 여러 철학적 내용들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줄거리에서 도시에서 일한 사건을 말해 보면, 베르테르는 말단 공무원 정도 되었다. 그런데 공작은 항상 문서를 해 가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돌려준다. 또, 접속사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도치법도 쓰면 안 되고 관청식의 어법에 맞추지 않으면 복합 문장은 쓰면 안 된다. 이런 사람 요즘도 많다. 말만 하는 사람들이랄까. 본인들이 하지도 않으면서 막상 내가 해 오면 불만을 터뜨리고, 본인이 어떤 대안을 내놓지도 않고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본인 생각을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공작과 몇몇 귀족들에 대해 베르테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어쩌면 인간들이 이럴 수가 있을까? 언제나 예의 범절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연회석상 같은 데서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몇 해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세. 이들은 달리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일세. 이런 사소한 알력으로 곧잘 옥신각신하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오히려 뒷전으로 미루기 때문에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형편이라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정치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여기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까봐 걱정이 되어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괴테는 베르테르가 겪는 고충을 통해 귀족들만 편히 살고 낮은 신분들만 힘든, 이런 사회가 개혁되었으면 하지 않았을까?
C백작의 파티 이야기를 다시 해 보면, 백작이 베르테르를 초대했는데 상류층 사람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그를 자꾸 흘깃흘깃 쳐다봤다. 결국 S부인이-귀한 신분이라고 나와서 정확히 어떤 계급인지는 모르겠다-C백작에게 뭔가를 이야기하자 그가 베르테르에게 돌려 말해서 쫓아낸다. 쫓아낸다고 표현하기보다 눈치 채고 파티를 빠져나왔다고 하면 될까? C백작은 베르테르의 신분에 크게 개연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 장면도 되게 인상 깊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신분이었지만 지금은 자본에 의한 암묵적 신분이 형성되어 있다. 나도 어쩌면 베르테르와 같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자세하게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대강 이해는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괴테가 책을 쓸 때 사랑에 집중하지 말고 이런 사회적인 내용에 집중했으면 이 책이 잘 팔리면서 사회가 잘 잡혔을 것만 같은 아쉬움이 든다. 아, 물론 그런 내용이었으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팔리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베르테르가 겪는 굉장히 사소한 일들은 그의 생각을 통해서 심오한 토론 주제로 바뀌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내 모습을 보고는 신사 체면에 저해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어. 나는 그의 표정에서 곧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각 있는 듯한 그의 설교를 귓등으로 흘러 넘기며 아이들이 망가뜨린 종이 집을 다시 세워주었네. 그랬더니 이 사나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법관 집 아이들은 가뜩이나 버릇이 나쁜데, 베르테르 때문에 완전히 버리게 되었다고 떠벌렸다네. 빌헬름! 세상에서 어린아이들만큼 나와 가까운 것이 어디 있겠나. (중략) 그런데 빌헬름, 우리는 우리들과 동등한 이 어린이들을, 아니 우리들이 본보기로서 우러러보아야 할 어린이들을 마치 소유물 다루듯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린이들을 향해 의지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대체 우리는 어디서 그런 특권을 부여받았단 말인가? 우리들의 나이가 그들보다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기 때문이란 말인가?]
여기 번역이 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동의가 가는 말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니고,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주어야 한다. 물론, 아직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어른들의 생각에 깨닫지 못한 아이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말처럼, 어린이들은 소유물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자라 주어야만 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과거에는 이런 현상이 적은 줄 알았는데 괴테가 살던 때에는 이런 일들이 많았나보다. 요즘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인 양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아닌 부모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가 원하지 않는 학원에 보내고, 원하지 않는 공부를 시키고, 원하지 않는 책을 읽힌다. 그들에게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있긴 할까. 베르테르가 신분 차별이 없는 현대 사회에 살았으면 훌륭한 학자나 정치가가 되어 사회를 잘 고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로테가 옆에 없을 때 그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에 베르테르가 죽었을 때 나도 눈물이 났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빌헬름이 편지를 쓸 때 꿈 깨라면서 도시에서 만난 B양하고 이어줬어야지, 훌륭한 사람 그냥 죽였네, 그 때는 정신과 의사 없었나,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더 공감이 갔다. 로테의 혼란스러운 마음, 알베르트의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받은 그 충격과 슬픔과 고통 등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베르테르는 좀 과대망상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도 정신건강을 잘 가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찾고 말이다.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인상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괴테가 왜 유명해졌겠는가? 베르테르 효과가 왜 발생했겠는가? 그 유명세에는 항상 이유가 있는 법이다.